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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 오클랜드 일상다반사

유방암 고위험군 "비정형유관증식증" 검진부터 수술 당일까지의 타임라인

by 쟌핏 202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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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최근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연코 건강검진이 될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방암 검진이긴 하지만, 덕분에 이 기회에 올 11월 한국에 가면 반드시 전체 건강검진을 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질병과 부상은 예방이 최고의 대책이기에 최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발병했다면, 대처가 빠를수록 더 좋으니까.

꽤 오랫동안 왼쪽 가슴 바깥쪽 1시 방향에 몽우리가 만져졌는데, 걱정과 호기심이 점점 커져서 담당 GP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직접 촉진해 보시고 검진 일정을 잡아주셨다. 재미있는 점은 그 몽우리가 아닌, 전혀 새로운 부분에서 암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비정형세포가 발견되었다. 지금은 수술을 잘 마치고 빠르게 회복 중인 상태이다. 유튜브나 뉴스 기사에 유방 전문의 선생님들의 설명이 잘 나와있지만 환자들의 후기가 없어서 내가 직접 남겨보기로 했다. 먼저 비정형 유관 증식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비정형 유관 증식증이란?

비정형 유관 증식증은 모유가 나오는 길인 유관을 구성하는 세포가 비정형적으로 증식한 상태다. 이는 유방암 발생위험을 1.5배에서 5배까지 증가시키는데, 가족력이 있는 여성의 경우 7배에서 13배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비정형세포가 유관을 꽉 채우고 있으면 상피내암으로 분류된다. 0 기암이라고 하나 치료과정은 1, 2기 암과 같은 수준이다. 따라서, 비정형 세포가 확인된 경우, 조직검사는 물론 종양부위를 절제하여 전체 조직의 암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2020년 - 2023년 심해지는 PMS와 커져가는 유방의 혹

두 번째 문단에서 언급한 몽우리가 생긴 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여긴 가장 오랜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운트이든에 살 때였으니 그게 벌써 4년여 전이다. 나는 생리통이 극심한 편은 아닌데, 평소 배란통도 곧잘 느끼고 생리전증후군(PMS)도 복합적으로 있어왔다. 쉽게 말해, 청소년기 때부터 호르몬에 지배받는 일상을 이어온 것이다. 슬프게도 30대에 접어들면서 그 성가심의 정도와 빈도가 심해졌다. 특히 생리전증후군은 전에 없던 여드름까지 심하게 만들어서 경구피임약을 처방받기까지 했었다. 한 달 정도의 적응기 이후로 여드름과 생리통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왜인지 유방팽만감과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문제의 몽우리 역시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아 여러 GP선생님과 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유방암 자가체크 항목만 체크하셨고, 결과는 늘 '정상'이었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한동안 방치해 둘 수밖에 없었다.

2023년 10월 말, 몸이 여기저기 좋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밤은 PMS로 유방통이 심해 잠을 설치고 열감까지 느껴졌다. 처음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한 근육통인가 싶어 조금 참아봤으나 이틀정도가 지나도 그대로여서 새로운 GP선생님께 다시금 문의를 드렸다. 이 때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진 않았다.

2024년 1월 GP 촉진, 적극적인 유방암 검진 요청

열감이 있던 유방통은 없어졌지만, 아토피가 너무 심해져서 GP를 다시 찾았다. 새로운 선생님은 Tend라는 화상 진료 어플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인 여성 GP이신데 직접 뵌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상통화로도 굉장히 친절하셨지만, 현장진료 때 더 사려 깊고 따뜻한 분이란 걸 느꼈다. 이런저런 팔로우업을 하다가 이번만큼은 유방암 검진을 꼭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여쭤봤다. 장갑을 끼고 촉진을 해주셨는데 만져보시더니 크기가 조금 커서 바로 유방암 검진센터로 리퍼럴을 보내주시기로 했다. 몇 주 기다리니 마누카우 SuperClinic으로부터 검진일정 메일이 왔다.

 2024년 2월 유방암 Xray와 초음파 검진, 새로운 혹(왼쪽 가슴 5시 방향) 발견

평소 미디어를 통해 유방암 검사가 어떤 건지 대충 들어본 적 있어서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더구나 나는 치밀 유방이기도 하고 잡히는 몽우리도 크고 단단해서 더 아플 거란 생각으로 한껏 쫄아있었다. 웬걸, 길고 긴 대기시간으로 지쳐서 뭐라도 빨리 진행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더니, 막상 검사는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검사 결과는 당일에 바로 나오지 않지만, 전문의 선생님께서 걱정될만한 몽우리는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생체검사 일정도 잡아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5시 방향에 내가 모르던 쌀알만 한 몽우리도 있어서, 생검 때 다시 확인해 주신다고 했다.

2024년 3월 11일 1차 생체검사(Biopsy)와 또 다른 혹(왼쪽 가슴 7시 방향) 이상소견

뉴질랜드 복지는 다방면으로 좋은 편이지만, 인력도 부족하고 일처리 속도가 굉장히 느려서 병원, 은행, 관공서 등의 일정을 개인일정에 맞추기 어렵다. 그래서 죄송함을 무릅쓰고, 회원님들께 내 사정을 알리며 일정을 조율해야 했다. 회원님 중에는 유방암 환자도 몇 있으시고, 가족이나 지인이 유방암 이력이 있으셔서 많이들 이해해 주시고 걱정과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특히 한 회원님께서는 생검이더라도 매우 아플 수 있어서 내 파트너가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면 같이 가주시겠다고 할 정도로 큰 힘이 되어주셨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는데, 내 파트너 또한 적극적으로 병원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번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검사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Xray와 초음파를 다시 찍었고, 생검할 부위에 마킹을 했다. 안내대로 침대에 누워 왼팔을 머리 뒤편에 둔 채 전문의 선생님을 기다렸다. 저번과는 다른 분이 들어오셨다. 시술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먼저 해주셨고, 이번에 하는 시술은 총 조직검사여서 말 그대로 총을 쏘는 듯한 소리와 느낌이 들 거라고 말씀하셨다. 따끔한 국소마취 후, 생검이 진행되었고 대여섯 번 정도의 '탕!' 소리와 함께 스프링 튕기는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통증레벨은 매우 낮았다.

생검 부위를 소독한 후, 초음파를 한 번 더 보셨다. 그런데 1시 방향도, 5시 방향도 아닌 전혀 새로운 부위인 7시 방향에 한동안 머무르셔서 뭔가 이상했다. 10분처럼 느껴진 10초의 정적. 몇 번의 내적갈등 끝에, 죄송하지만 마킹된 부위는 7시 방향이 아니라 5시 방향인데 혹시 소견서를 잘못 보고 계신 건 아닌지 여쭤보았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다. 선생님께서는 이상소견이 있다며 생검일정을 또 한 번 잡아준다고 하셨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뒤의 예약대기 환자들과 뉴질랜드의 부족한 병원인력, 기술 등으로 당일 연속 검사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또 다른 이유는 다음 생검 때 알게 된다.

생검 결과는 이상소견이 아닐 경우,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정확히 열흘 뒤 전화가 왔다. 그러나 여전히 두 번째 생검이 남아있었기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2024년 3월 22일 2차 생검(Biopsy), 3월 28일 비정형유관증식증(ADH) 확진

첫 번째 생검은 마취가 풀리고도 크게 아프지 않아서 일상생활 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물론 미리 진통제를 먹어둬서 후폭풍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 샤워와 운동도 피했다. 상처는 금방 아물었고 멍도 빠르게 사라졌다. 두 번째도 비슷하겠거니 했지만 Oh boy... 큰 오산이었다. 모든 게 달랐다. 시술 방식부터 받는 자세, 통증도 전부 달랐다. 아마 이래서 1차 생검 때 연속검사를 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아무튼 2차 생검은 맘모톰시술이었는데 편히 눕는 게 아니었다. 등받이가 세워지는 베드에 앉아서 큰 촬영기계에 왼쪽 가슴이 납작하게 눌린 채로 시술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채취 부위가 지난번에 비해 작아서인지, 어쩌면 마취가 덜 된 게 아니었나 의심이 갈 정도로 너무 아팠다.

시술이 진행되면 될수록 통증 레벨이 올라갔는데, 지난번 단발적인 채취가 아니라 시술부위 깊은 곳에 꽂힌 관으로 내 생살이 갈리면서 뽑혀 나가는 느낌과 불타는 느낌이 났다. 사실 나는 아픈 걸 잘 참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번엔 저절로 눈이 질끈 감겼고, 열심히 참아보겠다고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과 크고 작은 탄식이 연거푸 새어 나왔다. 다정한 간호사 선생님과 수술 선생님이 나를 쓰다듬어주시며 진정시켜 주셨다. 파트너 없이 온 걸 제대로 후회했다. 물론 평소에도 파트너에게 많은 부분 의지를 해왔겠지만 이 날만큼은 그의 필요성을 더욱 피부로 느꼈다.

여차저차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남은 일은 유선통보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2주가 지나도록 내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고, 결국 직접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야 했다. 두 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듣게 된 좋지 않은 소식. 역시 기다리다가 진이 빠진 바람에,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 걸 듣는데도 아이러니하게도 속이 시원했다. 처음 뵙는 한국인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아마 병원 측의 배려였지 싶다. 아니나 다를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용어. 비정형 유관 증식증(Atypical Ductal Hyperplasia).  수술여부는 내 선택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유방암 발병률이 높은 케이스이므로 수술이 무조건 필요하다고 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내가 응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최우선순위로 수술일정이 잡힐 거라고 했다. 

3월 28일 이스터 롱위켄드의 시작, 나는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파트너와 한국 가족에게 수술 사실을 알렸다. 담백한 위로를 받았다.

2024년 4월 10일 수술 전 검사(Pre-admission)

수술날짜가 확정되기까지 병원 측의 여러 혼선이 있었다. 뉴질랜드 영주권자는 공공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내 수술도 전액 무료로 진행되었다. 때문에 최신 비자 및 개인정보를 새로 증명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병원 간 소통 문제가 있었는지 뭔가 조금 늦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내 담당의가 수술 날짜와 장소를 임의대로 바꿔버려서 간호사들도 내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업 도중에 병원 전화를 받느라 회원님들께  또다시 죄송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웃긴 게 내가 전화를 몇 번 받지 않으면, 수술 거절 의사로 알고 수술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수술 예정일에 맞춰 휴가 신청과 휴강 공지를 올렸기 때문에, 병원에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했고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수술은 수면마취 및 전신마취로 진행되어서 수술 전 검사(Pre-admission)가 필수라고 했다. 4월 10일 한 번 더 병원에 방문하여 키, 체중, 혈압, 최근 건강상태를 체크했고,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날은 파트너 생일이기도 했는데, 내가 알게 모르게 예민해져 있었는지 저녁에 별 것 아닌 걸로 말다툼을 해버렸다.

2024년 4월 19일 수술 당일

내가 받기로 한 수술은 외과적 절제수술이어서 수면마취를 동반한 전신마취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정확한 수술시각은 수술 당일까지도 알 수 없었고, 레터에는 오후라고만 쓰여있었다. 다만 하루 입원에서 당일 퇴원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비교적 빠르고 간단한 수술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정확한 수술을 위해 왼쪽 유방 해당 부위에 철사(Hook wire)를 삽입한다고 했고, 그 시술은 오전 9시 15분까지 병원에 도착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와이어 삽입하고 적어도 두어 시간 뒤면, 뭐 늦어도 점심시간이면, 수술대에 오를 줄로 기대했다. 그래서 속 편하게 전날 오후 3시까지만 식사를 하고 자정까지만 물을 마신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는 뉴질랜드. 정오가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아마 그즈음 파라세타몰 두 정을 주셔서 소주컵 용량의 물과 복용하긴 했다. 그 몇 모금이 정말이지 단비 같았다. 간호사 선생님 서너 분과 마취과 의사 선생님 두 분, 수술 담당의사 선생님 한분과의 면담이 이뤄진 끝에 오후 2시 40분, 비로소 수술실로 향했다.

평소에 대식가인 내가 24시간 단식을 해버리니, 신체 온도가 35.8도로 낮아져 있었고 혈관들은 한껏 숨어버려서 마취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다른 마취과 선생님은 내가 긴장한 줄 알고 긴장이 풀리는 가스를 마시게 하셨는데, 글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 아무튼 세 번의 시도 끝에 마취 주사를 꽂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깨고 보니 회복실이었고, 연신 하품이 났다. 나와 비슷하게 누워있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간호사 분이 수술이 잘 끝났고 1차 회복실에 잠시 있다가 2차 회복실로 옮겨질 거라고 했다. 파트너에게 연락을 했으니 곧 올 거라고 전해주셨다. 마취 기운이 슬슬 가시면서 수술부위가 아파왔고, 간호사 선생님은 진통강도가 센 트라마돌을 주셨다. 주사로 넣어주시려고 했으나 혈관이 보이질 않아서 또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오른쪽 손목부터 검지손가락까지 혈관이 잘못 찔렸는지,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수술 일주일 차)까지도 찌릿하고 뻐근한 통증이 남아있다. 손등 30% 정도 시퍼런 멍으로 덮여있다.

한국과 다르게 뉴질랜드는 병원에서 밥이 나오진 않는 것 같다. 파트너 손가락 수술 할 때  나왔던 똑같은 참치 샌드위치를 받았다. 파트너가 내 요청대로 아몬드를 사 왔고, 아침에 준비해 준 사과와 함께 먹으며 퇴원 수속을 했다. 수술 후 주의사항과 진통제 처방전, 2주 뒤 팔로우업 세션을 안내받았다. 이번엔 잊지 않고 방수테이프도 받아왔다.

수술부위를 크게 움직이지 않기 위해서 파트너가 옷도 입혀주고 머리도 묶어줬다. 아, 환복 전에 간호사 선생님이 내 수술부위를 직접 보게끔 확인시켜 주셨다. 왼쪽 유방 아래쪽에 내 손바닥 반만 한 밴드가 단단히 붙어있었다. 다행히 컨디션이 매우 괜찮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파트너와 농담을 할 수 있었고, 귀갓길에  부모님과 동생, 걱정해 준 지인들에게 수술 잘 마치고 집에 가고 있단 소식도 전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첫 식사이자 저녁식사로 푸짐한 포케볼을 한 그릇 뚝딱 비우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서 포케 다 먹고 차에 탄 순간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술 당일까지의 내용은 여기서 마무리해 본다. 다음 포스팅은 수술 후 일주일까지의 기록을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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